
전자담배는 오랫동안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운 대안’ 또는 ‘금연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인식돼 왔다. 연기가 아닌 수증기처럼 보이고, 일부 유해 성분 수치가 낮다는 점이 이런 인식을 키웠다. 그러나 의료계의 판단은 다르다. 전자담배 역시 건강에 유의미한 위험을 주는 또 하나의 담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전자담배에서 나오는 하얀 기체는 단순한 수증기가 아니다. 니코틴과 중금속, 발암 가능 물질이 섞인 ‘에어로졸’로, 인체에 직접적인 생물학적 영향을 미친다. 겉모습만 다를 뿐, 폐와 혈관에 유해 입자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일반 담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일부 흡연자는 전자담배의 특정 유해 성분 수치가 낮다는 점을 근거로 위해성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이는 단순한 해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분석 결과,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 함량은 일반 담배와 비슷하거나 더 높게 측정된 사례도 있다. 또 전자담배 에어로졸에서는 기존 담배에는 없던 80여 종 이상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확인됐다.
특히 가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금속 입자는 폐포 깊숙이 침투해 만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정 성분이 줄었다고 해서, 몸이 받는 전체 독성 부담까지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심혈관계 위험도 분명하다. 여러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전자담배 사용자는 비사용자보다 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1.53배 높았다. 과거 흡연 경험이 있는 전자담배 사용자의 경우 심근경색 위험은 2.52배, 뇌졸중 위험은 1.73배까지 상승했다. 니코틴이 혈압과 심박수를 높이는 동시에, 에어로졸 속 미세 입자가 혈관 내피 기능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폐 건강 역시 안전하지 않다. 전자담배 사용자의 폐 기능 지표인 1초간 강제호기량(FEV₁)은 비사용자보다 약 14% 낮게 나타났다. 장기 추적 연구에서는 전자담배 사용이 기존 흡연 여부와 관계없이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일반 담배와 전자담배를 함께 사용하는 이중 사용자는 COPD 위험이 약 3.9배까지 증가했다.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흡연 형태도 바로 이중 사용이다.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80% 이상이 일반 담배를 함께 피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체내 독성 물질 노출은 줄지 않고, 심혈관 질환 위험은 오히려 더 커진다.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의 공통점은 니코틴이다. 니코틴은 강한 중독성을 지닌 물질로, 흡연 욕구와 금단 증상을 유발하고 심혈관계에 직접적인 부담을 준다. 실제로 전자담배는 미국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공식적인 금연 보조기기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
국내외 조사에서도 전자담배가 금연으로 이어지기보다 흡연을 지속시키는 경향이 관찰된다. 최근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는 흡연자가 담배를 끊기보다 전자담배로 옮겨가는 ‘이동 현상’이 확인됐다. 청소년의 경우 전자담배 경험이 이후 일반 담배 흡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최근 등장한 초음파 방식 전자담배 역시 기존 제품과 유사한 수준의 독성 물질을 생성하고 세포 독성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기술 방식이 달라져도 근본적인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조유선 교수는 “전자담배는 연초보다 덜 해로운 대안이 아니다”라며 “형태만 달라졌을 뿐, 건강에 부담을 주는 또 하나의 담배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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