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마도 난파선 목간 발견과 1208년 고려 조운선의 비밀

동일 인물 목간 필체로 드러난 1208년 선단 운항과 경상도 조운선의 서해 횡단 흔적

기사 핵심 요약

태안 마도 난파선 수중 발굴을 통해 1208년 전라도에서 개경으로 함께 향하던 조운선 선단과 경상도 출항 선박의 실체가 확인됐다.

  • 마도5호선에서 1207년 12월 제작 목간 26점과 선체 조각 등 유물 54점이 수습됐다.
  • 마도1호선과 마도5호선 목간 필체가 일치해 두 선박의 1208년 선단 공동 운항이 드러났다.
  • 마도6호선 지점에서 경남 사천과 진주 출항 기록이 담긴 목간이 서해안 최초로 출토됐다.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난파선 두 척이 800여 년 전 전라 지역에서 함께 출발한 화물 운반 선단이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태안 마도 해역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마도5호선의 선체 일부와 유물 54점을 수습하고, 인근에서 경상도 출항 기록이 담긴 마도6호선의 매장 흔적을 처음 확보했다고 밝혔다. 바닷속에서 약 250m 간격을 두고 발견된 마도5호선과 마도1호선에서는 같은 인물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물 표찰 목간이 함께 출토됐다. 태안 마도 난파선 발굴 성과는 문헌 기록이 드문 고려시대 조운 체계와 수운 유통 경로를 구체적으로 복원하는 실증적 자료로 평가받는다.

태안 마도 해역 바닷속에서 마도5호선 선체와 목간을 수중 발굴하는 조사요원들
태안 마도 해역 수중 발굴 현장에서 고려시대 목간과 닻돌 등 선체 유물이 수습됐다 (사진 - AI 생성)

마도5호선 발굴 성과와 1207년 제작 목간의 내용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조사단은 지난해 청자 다발과 선체 조각이 처음 포착된 지점을 집중 조사해 마도5호선의 실체와 세부 적재 유물을 규명했다. 수중 발굴 현장에서는 선박을 정박할 때 사용한 닻돌과 밧줄을 비롯해 곡식을 담았던 볏섬, 청동 항아리 등 총 54점의 유물이 수습됐다. 화물의 발송지와 수취인, 품목 등을 붓글씨로 기록한 목간 26점이 한꺼번에 수습되며 배의 침몰 연대와 운항 성격을 파악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수습된 목간에는 화물을 모아 포장한 시점을 가리키는 '정묘년(丁卯年)'과 '정묘 12월'이라는 간지가 남아 있었다. 연구진은 목간과 볏섬 등 유기물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와 함께 출토된 청자의 제작 기법 및 양식을 대조해 정묘년을 1207년으로 특정했다. 음력 12월은 거친 겨울 바다로 인해 항해를 피하는 시기인 만큼, 화물을 실은 선박은 이듬해인 1208년 봄바람이 부는 시기에 맞춰 출항했을 가능성이 크다.

목간에 적힌 화물 출발지는 전라도 영암군과 안로현(현 전남 영암군 금정면 일대)으로 확인됐으며, 최종 목적지는 고려의 수도 개경이었다. 지방 군현에서 거둬들인 곡물과 특산물을 개경의 관청이나 권력자에게 올려 보내던 조운 화물선이 태안 앞바다의 험한 물길을 건너다 침몰했음을 보여준다.

마도5호선과 마도1호선에서 출토된 고려 정묘년 묵서 목간 유물
출토된 목간의 필체와 작성 내역은 두 선박이 동일한 선단을 구성했음을 시사한다 (사진 - AI 생성)

동일 인물 필체 확인과 마도1호선과의 선단 운항 가능성

마도5호선의 운항 궤적은 2009년 태안 해역에서 인양된 마도1호선의 항로 및 화물 집적 시기와 시간적·공간적으로 맞물린다. 과거 발굴된 마도1호선 역시 1207년 말 전라도 해남, 나주, 장흥, 영암 등 서남부 일대에서 화물을 모아 1208년 개경으로 운송하던 중 난파된 조운선이었다. 두 선박의 침몰 지점은 수중에서 약 250m 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가깝다.

결정적인 단서는 두 배에서 출토된 목간의 필체 일치에서 드러났다. 마도5호선 목간 중에는 안로현에서 개경의 송득덕(宋得德)이라는 인물에게 화물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는 마도1호선에서 수습된 안로현 발송 목간의 글씨체 및 기재 형식과 거의 같았다. 같은 지역의 하급 관원이나 서기가 두 배에 실릴 화물 표찰을 같은 시기에 연달아 작성했음을 보여준다.

신종국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수중발굴과장은 "두 목간은 동일 인물이 쓴 것으로 보인다"며 "보통 화물선은 선단을 이루고 출항하는데, 두 배도 함께 출발했다가 침몰한 게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려시대 조운선이 단독 항해를 하기보다 여러 척이 무리를 지어 위험한 서해 뱃길을 건너는 선단 운항 방식을 취했음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근거다.

마도5호선과 마도1호선의 주요 출토 기록 비교

두 난파선은 화물 집적 시기뿐 아니라 선적 지역과 도착지, 출토 유물 구성에서도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표: 마도5호선과 마도1호선 발굴 조사 비교
구분 마도1호선 마도5호선
발견 연도 2009년 2024년(선체 조각)·2025~2026년 본격 확인
화물 집적 시점 1207년(정묘년) 1207년(정묘년 12월 목간 확인)
추정 출항 시기 1208년 봄 1208년 봄
출발 지역 해남·나주·장흥·영암 등 전라 서남부 영암군·안로현 등 전라 지역
화물 목적지 개경 개경(수취인 송득덕 등)
주요 유물 곡물, 도자기, 목간 등 선체 일부, 닻돌, 볏섬, 청동 항아리, 목간 26점 등

출처: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발표 자료(2026.11.04)

경상도 출항 흔적을 처음 드러낸 마도6호선의 발견

이번 수중 발굴에서는 마도5호선 외에도 또 다른 고려 선박인 마도6호선의 실마리가 함께 확인됐다. 조사단은 마도2호선 매장 지점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구역을 음파 지층탐사로 포착한 뒤 시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고려시대 청자 기름병과 도기 정병, 목간 등 유물 20여 점을 찾아냈다.

마도6호선 발굴에서 가장 주목받는 성과는 출항지가 경상도 지역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수습된 목간 가운데는 '사주호장목량(泗州戶長睦亮)'과 '반성형지O미(班城邢遲O米)'라는 글귀가 적힌 유물이 포함됐다. 이는 각각 사주의 토착 호장인 목량과 반성현의 인물이 쌀 등의 화물을 보냈다는 사실을 뜻한다.

사주는 오늘날의 경상남도 사천이며, 반성은 경남 진주 일대에 해당한다. 사천 지역에는 고려시대 세곡을 모아 보관하고 운송을 준비하던 국영 조창인 통양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 서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난파선은 주로 곡창지대인 전라 지역에서 출발한 선박이었다. 연구소 측은 아직 선체 원형 전체가 노출되지는 않았으나 경상도 남해안에서 출발한 조운선의 매장 흔적을 최초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마도6호선 발굴 지점에서 수습된 고려시대 도자기 및 정병 유물
마도6호선에서는 경상도 사천과 진주에서 보낸 화물 표찰과 고려 도기가 함께 확인됐다 (사진 - AI 생성)

고려시대 조운 체계 규명과 수중고고학적 의의

태안 마도 난파선의 잇따른 발굴은 고려시대 경제 제도와 세곡 운송 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핵심 성과로 꼽힌다. 고려사는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해 선박 운항 일지나 지방 창고 운영 세칙 같은 미시적 행정 기록이 부족하다. 바닷속 갯벌에 묻혀 보존된 목간과 유물은 당시 지방 호족의 역할, 수취 체계, 포장 단위, 해상 물류 동선을 실증하는 1차 사료 역할을 한다.

태안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암초가 많아 안흥량이라 불리는 전통적인 험로였다. 과거 조선시대 마도4호선을 비롯해 여러 시대의 화물선이 이곳에서 난파된 채 발견된 바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전라도에서 출발한 1208년 선단의 편대 운항 실태와 경상도 조창에서 출발한 선박의 서해 횡단 경로가 나란히 입증됐다.

문경호 국립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고려시대 조운에 관한 문헌 기록이 많지 않은 가운데, 당시 조운의 실상을 실증적으로 알려주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확인된 마도5호선과 마도6호선 일대를 중심으로 선체 매장 상태를 살피고 유물 인양 작업을 이어갈 방침이다.

자주 묻는 질문

마도5호선과 마도1호선이 같은 선단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난파선은 약 250m 거리에 묻혀 있었으며, 1207년 12월 전라도 안로현에서 개경의 송득덕에게 화물을 보낸 목간의 필체와 작성 형식이 거의 동일해 같은 인물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마도6호선 발굴이 학술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서해안에서 발견된 고려 난파선은 전라 지역 출발 선박이 대부분이었으나, 마도6호선에서는 경남 사천(사주)과 진주(반성)의 지명이 적힌 목간이 나와 경상도 조운선의 서해 운항 흔적을 처음으로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발굴된 유물의 연대는 어떻게 특정되었나요?

목간에 적힌 '정묘년' 간지와 볏섬 등 유기물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 함께 출토된 고려청자의 제작 기법 및 양식을 종합적으로 대조해 1207년으로 특정했습니다.

참고자료

  1. 국립해양유산연구소
ⓒ 2024–2026 인트라매거진.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