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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농심신라면배

제1회 농심신라면배는 한·중·일이 5명씩 참가하는 연승전으로 치러진 첫 대회로, 2000년 3월 28일 한국이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개요

제1회 농심신라면배는 한국·중국·일본의 프로 바둑 기사들이 국가별 팀을 구성해 연승전 방식으로 승부한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의 첫 대회다. 1999년에 시작돼 2000년 3월 28일 종료됐으며, 한국이 초대 우승국이 됐다. 이후 농심신라면배는 한·중·일을 대표하는 장기 국가대항 바둑대회로 정착했다.

대회는 세 나라가 각각 5명의 대표 선수를 내보내고 승리한 기사가 다음 상대와 계속 대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패한 선수는 탈락하며, 상대 두 국가의 선수를 모두 탈락시키고 마지막까지 선수를 남긴 국가가 우승하는 구조다. 이러한 연승전 방식은 개인의 연승이 곧 국가대표팀 전체의 성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단체전과 차이가 있다.

첫 대회와 참가 선수

제1회 대회 한국 대표는 목진석, 김영삼,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로 구성됐다. 당시 한국은 세계 바둑의 정상권에서 활동하던 조훈현·유창혁·이창호와 젊은 기사들을 함께 배치해 첫 대회에 참가했다.

농심신라면배 초창기에는 국적 자체보다 한국기원·중국기원·일본기원 등 소속 기원을 기준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이 때문에 일본기원 소속으로 활동하던 한국 출신 기사도 일본팀 선수로 참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출전 기준은 이후 대회 운영 과정에서 국적별 방식으로 변경됐다가 다시 기원 소속 기준이 적용되는 등 조정됐다.

첫 대회에서도 승자가 계속해서 다른 국가의 다음 주자를 상대했다. 선수 한 명이 연승하면 상대 팀의 여러 기사를 연속으로 탈락시킬 수 있었고, 반대로 선봉이나 중견이 빠르게 패하면 다음 주자가 일찍 출전해야 했다. 이 구조는 출전 순서와 마지막 주장 역할의 중요성을 크게 만들었다.

한국팀의 대회 전개

한국은 초반부터 여러 선수가 승리를 나누어 기록하며 마지막 단계까지 우승 경쟁을 이어갔다. 목진석은 한국의 초반 주자로 활약했고 김영삼도 대표팀 승리에 기여했다. 조훈현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등 당시 세계 정상급 기사들과 대국하며 중반 승부에 참가했다.

유창혁에 이어 마지막 주자로 배치된 이창호까지 출전하면서 대회는 최종 단계로 이어졌다. 이창호는 당시 국내외 주요 세계기전에서 정상급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기사였으며, 농심신라면배에서도 이후 여러 대회에 마지막 주자로 출전해 한국의 우승을 결정하는 역할을 반복하게 된다.

제1회 대회는 마지막까지 세 나라의 정상급 기사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연승전 특유의 긴장감을 보여줬다. 한국은 목진석·김영삼·조훈현·유창혁·이창호로 이어지는 5명의 대표팀을 통해 최종적으로 우승을 확정했다.

초대 우승과 의미

제1회 농심신라면배는 2000년 3월 28일 한국의 우승으로 끝났다. 한국기원 바둑아카이브즈에서도 이날을 제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이 초대 우승을 차지한 날로 기록하고 있다.

첫 우승은 이후 농심신라면배 초기 흐름의 출발점이 됐다. 한국은 제1회부터 제6회 대회까지 6회 연속 우승하면서 대회 초창기에 강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이창호는 여러 대회에서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활약하면서 농심신라면배를 대표하는 기사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제1회 대회를 통해 정착된 한·중·일 5명씩의 연승전 구조는 이후에도 농심신라면배를 특징짓는 핵심 방식으로 이어졌다. 개인의 한 판 승부와 국가대표 단체전의 성격을 결합한 이 형식은 장기간의 연승, 마지막 주자의 역전, 국가별 선수 운용이라는 독특한 승부 요소를 만들어냈다. 제1회 대회는 이러한 농심신라면배의 전통이 시작된 대회라는 점에서 한국과 동아시아 프로바둑사에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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