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의 예술이 전시장 밖으로 나왔다. 영상과 설치로 시대를 앞서갔던 그의 작업은 이제 달력이라는 가장 일상적인 매체를 통해 매일의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2026년 달력을 공동 제작하며,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 자체를 확장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이번 달력은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한 작품 이미지와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에 수록된 글, 인터뷰 어록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단순히 이미지와 문구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월과 계절의 흐름에 맞춰 작품과 텍스트를 선별한 큐레이션형 달력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한 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달력 위에서 백남준의 문장과 이미지가 나란히 놓이며, 시간은 기능적 단위를 넘어 사유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번 협업을 통해 예술을 ‘관람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요소’로 제안한다. 매일 넘기는 달력 속에서 예술가의 사유를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전시장에서의 일회적 감상과는 다른 깊이를 만든다. 책상 위, 벽 한켠에 걸린 달력은 백남준의 예술이 생활 속 리듬과 호흡하도록 돕는 매개가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백남준 서거 20주기를 맞아 추진됐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한다. 하나금융그룹은 문화예술 분야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제작에 참여했으며, 기업과 문화기관이 협업해 예술의 공공적 가치를 확장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났지만, 결과물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일상적 형태로 구현됐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달력은 누구나 매일 마주하는 가장 일상적인 매체”라며 “그 안에 백남준의 이미지와 언어가 들어오는 순간, 예술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협업이 백남준의 예술정신이 일상 속에서 더 넓게 호흡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번 달력 제작에 맞춰 관람객 참여 이벤트도 마련했다.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하루 50부씩, 총 150부의 2026년 달력을 선착순으로 제공한다. 전시 경험을 공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일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이다.
예술이 전시장에만 존재하던 시대는 지났다. 백남준의 달력은 시간을 표시하는 도구이자, 매일 새로운 질문을 건네는 예술 매체로 기능한다. 하루를 시작하며 넘기는 한 장의 종이가 예술가의 사유와 만나는 순간, 일상은 조금 다른 깊이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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