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산업에 이례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기업 간 거래(B2B)에 머물렀던 반도체 기업들이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굿즈 비즈니스’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계기로 높아진 대중적 관심을 브랜드 가치로 연결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 장비 기업까지 나선 굿즈 실험
지난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후공정 장비 업체 한미반도체는 최근 네이버스토어에 공식 굿즈 스토어를 열었다. 반도체 장비 기업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공식 굿즈 판매에 나선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와 함께 HBM 핵심 장비인 열압착(TC) 본더를 공동 개발한 기업으로, 최근 HBM 시장 확대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4936억 원, 영업이익 2237억 원을 기록하며 업계 내 영향력을 키웠다.
굿즈 스토어에서는 팝 아티스트 필립 콜버트와 협업한 의류와 국내 블록 제조사 옥스포드와 제작한 TC본더 레고 등 10종의 상품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일부 제품은 출시 직후 품절되며 관심을 모았다.

■ HBM, 기술에서 소비재로
앞서 SK하이닉스도 굿즈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1월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협업해 HBM 칩 형태를 활용한 ‘허니바나나맛 HBM칩스’를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8주 만에 35만 개가 판매되며 완판을 이어갔다.
업계에서는 기술 용어로만 인식되던 HBM이 소비재로 재해석되며 반도체에 대한 대중적 거리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내 굿즈에서 브랜드 자산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굿즈를 주로 사내 복지나 방문객 기념품 용도로 활용해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원 선물로 제작했던 반도체 공장 레고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몬드리안 스타일을 적용한 반도체 공장 레고를 제작했고, SK하이닉스 역시 자사 공장을 형상화한 레고를 선보였다. 해당 제품들은 현재 단종됐지만, 중고 거래 시장에서 거래될 만큼 상징성을 남겼다.
■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팬덤 전략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굿즈 전략은 한발 더 나아가 있다. 엔비디아는 오프라인 행사와 팝업스토어를 통해 굿즈를 선보이며 팬덤을 형성하고 있고, 인텔은 의류와 문구류는 물론 반려동물 용품까지 온라인 스토어에서 판매 중이다.
TSMC는 2022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스타벅스와 협업해 반도체 회로 디자인을 적용한 머그컵을 출시해 매니아층의 관심을 끌었다. ASML 역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레고로 구현해 기술 상징성을 강조했다.
■ “단기 수익보다 브랜드 투자”
업계에서는 반도체 굿즈가 단기적인 매출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 축적을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가 산업과 투자, 미래 기술 담론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일반 소비자와의 접점이 확대된 만큼, 브랜드 스토리와 상징성을 강화할 필요가 커졌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술력과 고객사가 곧 브랜드였다면, 이제는 대중 인식과 이미지 관리도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며 “굿즈는 반도체 기업의 정체성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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