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식 명칭은 서울종합운동장야구장입니다.
해 질 녘 외야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고,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관중석을 스치던 풍경은 서울 시민에게 하나의 추억이었습니다.
치맥 한 잔과 함께했던 수많은 밤을 품은 잠실야구장이 2026시즌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서울시는 2026년 12월 잠실야구장 철거에 들어가며, 이 자리에 2031년 말 3만5000석 규모의 최신식 돔구장을 완공할 계획입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개장한 잠실야구장은 무려 45년 동안 한국 야구의 중심으로 자리했습니다.
이 구장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함께한 상징이었습니다.
잠실 일대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잠실섬과 부리섬 등 여러 섬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주민들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녔고, 물고기를 잡고 누에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신도시 조성 계획과 함께 섬들이 연결되며 지금의 잠실이 만들어졌고, 1975년에는 올림픽 유치를 염두에 둔 스포츠타운 개발 계획이 발표됩니다.
대한야구협회는 이에 발맞춰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를 선언했고, 종합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야구장은 1980년 4월 17일 착공해 1982년 7월 15일 완공됐습니다.
고 김인호 건축가가 설계한 잠실야구장은 전통 악기 장구의 곡선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외형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공사비 126억 원이 투입됐고, 좌우 100m, 좌우중간 120m, 중앙 125m에 이르는 넓은 그라운드는 당시 기준으로도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이는 장타력이 강하지 않던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개장 첫 경기는 우수고교초청대회였고, 1982년 7월 17일 경북고의 류중일이 부산고 김종석을 상대로 잠실야구장 1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프로야구 첫 경기는 같은 해 8월 1일 롯데 자이언츠와 MBC 청룡의 맞대결이었습니다.
이후 잠실야구장은 MBC 청룡, OB 베어스가 차례로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한 지붕 두 가족’ 시대를 열었습니다.
현재의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역시 이 구장을 함께 사용하며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냈습니다.
관중석은 개장 당시 3만500석에서 점차 개편을 거쳐 현재는 2만3750석으로 줄었지만, 그 밀도와 열기는 여전히 특별했습니다.
2015년까지는 포스트시즌 중립 경기장으로도 활용됐고, KIA 타이거즈는 12번의 우승 중 9번을, 삼성 라이온즈는 8번의 우승 중 5번을 잠실에서 확정지었습니다.
우승의 환호와 눈물이 가장 많이 교차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화려한 역사만큼이나 굵직한 사건도 적지 않았습니다.
1990년 8월 26일 해태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경기에서는 관중 난입 사태가 벌어졌고, 1983년과 1996년에도 굵직한 사건들이 잠실야구장을 무대로 일어났습니다.
잠실야구장은 언제나 한국 프로야구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품어온 공간이었습니다.
돔구장 공사가 진행되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LG와 두산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을 대체 구장으로 사용합니다.
주중에는 1만8000석, 주말과 포스트시즌에는 최대 3만4000석까지 개방할 예정입니다.
2032년 새 돔구장의 역사적인 개막전은 2031시즌 성적에 따라 주인공이 결정됩니다.
잠실야구장에서 쌓인 추억과 기록은 돔구장 내 기념관을 통해 보존될 계획입니다.
서울 시민의 마음속에 ‘고향’처럼 남아 있던 잠실야구장은 그렇게 한 시대를 마감합니다.
수많은 밤의 환호와 탄식, 그리고 기록을 남긴 채, 한국 야구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김용현 ([email protected])
같은 주제 기사 모아보기
스포츠 관련 기사 더 보기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