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한 혈액 검사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을 높은 정확도로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치매 조기 진단의 패러다임이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고가·침습적 검사에 의존해왔던 알츠하이머병 진단 과정에서 혈액 검사가 실질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뇌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임현국 교수 연구팀은 혈액 속 특정 단백질 비율을 활용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기술의 정확성을 검증했다. 연구팀에는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엄유현 교수도 참여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 & 디멘시아(Alzheimer’s & Dementia)’에 게재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은 국내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포함한 총 262명의 연구 참여자를 대상으로 혈장 내 ‘Aβ42(아밀로이드 베타 42)’ 대비 ‘p-tau217(인산화 타우 217)’ 단백질 비율을 측정했다. 이후 이 수치를 뇌 아밀로이드 PET 검사와 타우 PET 검사 결과와 비교 분석해 혈액 바이오마커의 진단 정확도를 평가했다. 그 결과 완전 자동화 면역측정 플랫폼을 통해 측정한 혈장 p-tau217/Aβ42 비율은 뇌 아밀로이드 PET 검사 양성 여부를 예측하는 데 약 94%의 매우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특히 진단이 모호한 회색 지대에 해당하는 환자 비율이 8%에 불과해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다. 알츠하이머병 진단 과정에서 애매한 결과가 줄어든다는 것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축적되고,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엉키면서 신경세포가 손상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혈액 바이오마커 비율은 아밀로이드 병리뿐 아니라 뇌 타우 PET 영상에서 확인되는 타우 단백질 침착 정도, MRI로 측정한 알츠하이머성 뇌 위축 소견과도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는 혈액 검사만으로도 알츠하이머병의 병리적 변화를 폭넓게 반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알츠하이머병 진단에는 뇌 PET 스캔이나 뇌척수액 검사가 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검사는 비용 부담이 크고 검사 과정이 침습적이어서 환자 접근성이 낮다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혈액 검사는 채혈만으로 비교적 간단하고 저렴하게 시행할 수 있어 대규모 치매 선별 검사나 조기 진단에 적합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특히 서구권 중심이었던 기존 연구 흐름에서 벗어나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 코호트에서 최신 자동화 혈액 분석 플랫폼의 성능을 처음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에 사용된 Beckman Coulter사의 완전 자동화 면역측정 플랫폼은 실제 임상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임현국 교수는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동아시아 코호트에서 완전 자동화 혈액 바이오마커 플랫폼을 독립적으로 검증한 세계 최초 사례로, 미국·유럽 중심으로 축적돼 온 알츠하이머 병리 연구에 아시아 데이터를 본격 편입함으로써 보다 포괄적이고 글로벌한 치매 생물학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됐다.”면서 “이는 다양한 인종·지역에서 혈액 바이오마커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첫 걸음으로서 국제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또한 엄유현 교수는 “혈액 검사가 기존의 고가 영상 검사 수준의 정확성으로 알츠하이머병 병리를 잡아낼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향후 임상 현장에서 치매의 조기 선별과 치료 효과 모니터링에 혈액 바이오마커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치매 조기 진단과 관리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혈액 검사 기반 알츠하이머병 진단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검사를 받고 조기에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계는 향후 대규모 임상 적용과 추가 검증을 통해 혈액 바이오마커 기반 치매 진단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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