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리그에서 1000승이라는 기록은 그 자체로도 경이롭지만, 그것이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기 위해선 우승이라는 트로피가 따라붙어야 한다.
그렇기에 김경문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는 야구팬들에게 묘한 질문을 던진다.
정말 많은 승수를 거둔 감독은 반드시 우승도 경험했을까.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예외도 존재한다. 김경문 감독이 그 대표적 사례다.
김경문 감독은 현재 KBO 리그 통산 992승을 기록 중이다. 단 8승만 추가하면 KBO 역사상 단 세 번째로 ‘1000승 감독’ 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만큼 긴 세월 동안 지도자로 활약했고, 뛰어난 승부사였다는 의미다. 그러나 수치가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김 감독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KBO 리그 역사에서 1000승을 넘긴 감독은 김응용 전 감독과 김성근 전 감독 단 두 명뿐이다.
김응용은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통산 1554승을 거두며 무려 10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명장이다.
그의 첫 우승은 1983년 해태 감독 시절로, 1000승 달성보다도 15년 앞서 이뤄졌다.
김성근 감독 역시 우승과 승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지도자다.
SK 와이번스를 이끌며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듬해 2008년 9월 3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히어로즈를 상대로 1000번째 승리를 기록했다.
두 감독 모두 이미 우승을 경험한 상태에서 1000승 고지를 밟은 것이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상황이 다르다. 2004년 두산 베어스 사령탑으로 데뷔한 뒤, NC 다이노스를 창단부터 맡아 팀을 정규시즌 1위로 이끄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끝내 손에 넣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무려 네 차례. 2005년, 2007년, 2008년 두산에서 세 번, 2016년에는 NC에서 한 번 경험했다.
매번 정점 직전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던 그에게 ‘우승’은 오히려 지독하게 닿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한화 이글스의 제14대 감독으로 깜짝 부임했다.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지만, 김 감독은 특유의 침착함과 리더십으로 한화 선수단을 정비하며 반등의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팀 성적은 여전히 중하위권이지만, 끈끈한 경기력을 보이면서 팀 컬러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평가도 따른다.
김경문 감독은 국가대표 사령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경험도 있다.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야구계의 은인”이라는 별명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정작 프로 무대에서의 우승이 없다는 사실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김경문 감독의 1000승은 단지 기록 그 자체로만 기억되기보다는, 오히려 우승 없는 대기록이라는 역설로 회자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한화와의 여정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지만, 감독 스스로도 마지막 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1000승 달성은 이제 눈앞이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기록보다 ‘한 번의 우승’일지 모른다. 그가 유일하게 채우지 못한 마지막 조각을, 한화에서 완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